옷은 천 한 조각에서 시작한다
예술성 인정받은 이세이 미야케 디자인
이세이 미야케는 스티브 잡스의 상징과도 같은 터틀넥 니트, 주름을 활용한 실용적인 옷 라인 ‘플리츠 플리즈’, 그리고 한국인에게도 인기인 ‘바오바오백’으로 유명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2022년 8월 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디자인은 패션 역사상 최초로 미국의 예술 매거진 ‘아트포럼’의 표지를 장식,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뮤지엄에 소장
‘천 한 조각’(A-POC; A Piece of Cloth)의 예술
주름이 생길 수 없는, 어디에나 어울리는 혁신적인 옷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으로는 주름진 천으로 만든 옷 ‘플리츠 플리즈’ 라인이 유명.
이 옷은 1988년 미야케가 뜨거운 열을 이용한 여러 기술을 연구한 끝에, 2-3배 큰 옷을 압축해 영구적인 주름을 만들면서 시작됐습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휴양지는 물론 세련던 디너나 오피스에서 어울리는데다, 주름도 가지 않아 아무렇게나 보관해도 걱정이 없고 세탁기로 세척이 가능한 혁신적인 옷이었죠.
혁신가 스티브 잡스의 눈에 띄다, 미야케가 디자인한 검은 터틀넥 셔츠
스티브 잡스가 기술 혁신을 이용해 ‘스마트폰’이라는 전에 없던 발명품을 만들었듯이, 이세이 미야케도 장식이나 디자인보다 옷의 본질을 고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만든 소니 직원들의 유니폼을 눈여겨 본 잡스는 애플을 위해서도 유니폼을 만들어 달라고 미야케에 제안하고, 그 뒤로 두 사람은 수십 년이 넘는 우정을 유지하게 됩니다.
잡스는 결국 미야케가 디자인한 검은 터틀넥 셔츠를 20년 넘게 입습니다.
미야케는 잡스에게 이 터틀넥을 100여 개 만들어 주었다고 하네요.
잡스의 옷장엔 이 검은 터틀넥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CEO 패션으로 보는 경영 철학 : 이세이 미야케가 디자인한 애플, 스티브잡스의 검은색 터틀넥
천 한 조각의 무한한 가능성
이세이 미야케는 생전 ‘패션’이라는 말을 싫어했습니다.
한 때 유행하고 마는, 기분에 따른 무언가가 아니라 사람이 입는 옷이라는 본질에 다가가고 싶어했기 때문이죠.
이런 고민의 일환으로 2000년 즈음 그는 ‘천 한 조각’(A-POC;A Piece of Cloth)이라는 브랜드를 만듭니다.
커다란 천 한조각을 입는 사람이 자신의 몸에 맞게 미리 만들어진 선을 따라 잘라 입는 옷입니다.
이런 미야케와 친했던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미야케는 천 한 조각의 무한한 가능성을 끈질기게 탐구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3-D 프린팅 같은 개념이 등장하기 전부터 옷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 이 디자인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습니다.
'바오바오백', 잡스 터틀넥 만든 이세이 미야케 별세 (2022년 8월 5일)
1938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미야케는 도쿄 다마미술대를 졸업
1965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기라로쉬, 지방시 등 유명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배우고 함께 일했다.
1969년에는 뉴욕으로 넘어가 패션 디자이너 제프리 빈 밑에서 일했으며
1970년 도쿄로 돌아와 미야케 디자인 사무소를 설립해 고급 여성복 패션업계에 뛰어들었다.
일본의 디자이너인 이세이 미야케는 1971년 뉴욕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
1973년 파리 패션위크에서 쇼를 선보였다.
1993년에 발표된 그의 여성복 대표작인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는 체형과 관계없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으로 세계 여성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이세이 미야케는 2010는 일본에서 문화훈장을, 2016년 프랑스에서 레지옹 도뇌르 3등 훈장 등을 받은 바 있다.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이기도 한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이끄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미야케는 1988년부터 의류의 주름을 연구했다. 옷감을 재단하고 옷의 형태를 잡아 재봉한 후 주름을 넣어 '가먼트 플리팅(garment pleating)'이라는 기술로 '플리츠(PLEATS)' 라인을 선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여성복 '플리츠 플리세'를, 남성복 라인으로 '옴므 플리세'도 내놓았다.
플리츠 라인은 가벼우면서도 실용적이다. 입는 이의 몸집에 따라 주름이 더 펴지거나 접혀 독특한 모양을 만들어 낸다.
미야케는 일본 전통 종이접기(origami, 오리가미 )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곡선까지 만들어 내며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또 다른 면으로 넓어진다.
또 다른 면은 한쪽에서 바라봤을 때고 사실은 모든 게 한 면이다.
미야케의 디자인은 '한 장의 천(a piece of cloth)'이라는 콘셉트를 이어오고 있다.
지금의 이세이 미야케를 만든 것들
평범한 사람을 위한 아방가르드
2015년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이세이 미야케는 “돈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티셔츠나 청바지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느끼는, 빨기도 쉽고 입기도 쉬운 그런 것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처럼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은 ‘대중을 위한 아방가르드’라는 평가를 받으며, 패션 디자인으로는 최초로 1983년 미국의 예술 매거진 ‘아트포럼’의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파리 68혁명을 보고, 보통 사람의 시대가 열렸음을 깨달았다”
미야케는 패션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기 라로쉬, 지방시 스튜디오에서 일하게 됩니다.
이 때 그는 “수퍼 리치와 전 세계 정치 지도자의 아내 등 대단한 고객들을 보면서 이런 문화에 익숙지 않은 내겐 패션 산업에서 미래가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파리 68혁명을 직접 목격하면서, 새로운 시대, ‘보통 사람’의 시대가 열렸음을 깨닫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미야케가 만든 여성 가방 브랜드인 '바오바오'도 한국에서 인기.
이 제품은 원단 위에 삼각형 모양의 반짝이는 소재를 결합해 이어붙여 만든 가방으로 넣는 물건에 따라 가방의 형태가 바뀌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과거에 갇히고 싶지 않다…밝은 미래를 이야기한 낙천주의자
뒤늦게 털어 놓은 히로시마 원폭 피해
미야케가 이렇게 ‘평범한 사람’, ‘천 한 조각’ 등 본질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의 아픈 기억입니다.
1938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그는 7살 때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를 경험합니다.
그 후유증으로 평생 다리를 절었고, 3년 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죠.
그럼에도 미야케는 ‘원폭 피해를 극복한 디자이너로 비춰지고 싶지 않다’며 이 사실을 침묵하다 2006년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털어놨습니다.
“눈을 감으면, 누구도 경험해서는 안 될 것들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선명한 붉은 빛과 그 뒤로 이어지는 검은 구름. 재앙에서 탈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나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한다. 나는 이 기억들을 잊어버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 대신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아름다움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옷을 디자인하게 된 것은 그것이 현대적이고 낙천적인 창조의 형태였기 때문이다.”
내 옷을 입었을 때 사람들이 기뻐하길 바란다
작게는 빨래나 구겨질 걱정 없이, 크게는 장소나 분위기에 상관 없이 즐겁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남기고 이세이 미야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게 가장 큰 관심사는 사람이다”라거나, “내 옷을 입었을 때 사람들이 기뻐하길 바란다”는 그의 마음은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한 마음 넓은 위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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